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김누리
작품소개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삶. 어떤 것이 있을까요?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 사람들이 인정하고 물질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 여하튼 편안해 보이는 삶을 걷어차는 사람에게 세상은 흔히 ‘미쳤다’고 합니다. 그 사람 안에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던 걸까요?“황야의 이리”의 주인공 하리 할러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고상한 취미도 경험해보고, 우리 내면에는 어...
💬 질문 9개
"너희는 말한다.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고. 그러나 너희는 어찌하여 오전에 긍지를 갖다가도 저녁에 이르러서는 체념하는 것이지?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토록 연약한 언동을 삼가라! 우리 모두 짐깨나 질 수 있는 귀여운 암수 나귀이니.(중략) 나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이제 나 가볍다. 이제 나 날고 있으며, 이제 나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야 어떤 신이 내 안에서 춤을 추고 있구나."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65 - '황야의 이리'의 하리 할러는 헤르미네와의 조우를 통해 '춤'을 배우면서 행복과 건강을 찾는데요, 혹시 각자의 삶에서 고양감과 삶의 기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취미나 리츄얼이 있으신가요?
고결한 존재, 삶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리는 모차르트와 같은 영원하고 신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이만이 고결한 존재이고, 진정한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한 두해만 지나면 그만 연주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뛰게 하고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게 만드는 곡을 연주하는 이들의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걸까요? 파블로는 음악의 가치를 논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저 자신은 사람들이 원하는 곡을 가능한 한 훌륭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최선을 다해 연주할 뿐이라고요. 영원하고 신적인 것을 쫓는 삶 vs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삶. 뭐가 더 가치있고 고결한 삶인걸까요?
황야의 이리들은, 나이가 들고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게 되면서,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살자가 되지 않는 한 언젠가는 결국 대중들이 결코 갖지 못하는 황야의 이리로서의 개성을 버리고 시민성을 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마음 속 깊이 황야의 이리로서의 본성을 간직하고 그리워 하고 있지만, 죽음을 두려워 하기에 결국 춤을 배우고 가장무도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탱고와 폭스트롯을 추며 자신의 고뇌와 고통을 유머로 승화시키고 스스로 발전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기에,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바꾸고 나아가게 만든다는 것은 운명 위에 놓인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대단한 발전이겠으나, 때로는 죽음을 극복하고 세상을 바꾸는 위인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유머를 택한 할리 하리나 헤르미네와 불멸자가 된 괴테, 모차르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 '용기'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하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교수와, 하리를 이해하는 이 책의 편집자에게도 똑같은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자리하신 분들 각자의 내면에 있는 이리와 인간의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모두 발언 후 간단히 통계도 내볼까 합니다!)
하리의 인간성, 그리고 이리의 모습을 보며 이 세상 모든 일은 현실과 이상 사이 간극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과 이상 사이를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개개인의 개성이 하나의 브랜드와 가치로 특히 대두되는 요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과 온/오프라인 등 생활 반경의 분화처럼 시대의 변화 속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에 주목하는 시대와 시대 사이의 한 시대라고 생각됩니다(하리가 겪는 것처럼!). 여러분 내면의 인간과 이리라고 생각되는(나누어진) 개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신의 인간성과 이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세우셨나요? 그리고 그렇게 나누어진 영혼의 조화와 갈등, 고통이 '개성'으로, 즉 '나'라는 개인이 타인, 혹은 더 넓게 한 사회에서 표현될 때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요?
헤르미네는 처음 만난 순간 “언젠가 당신은 나를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헤르미네라는 인물이 소멸해야만 하리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헤르미네가 죽음 이후 하리 그 자체로 내면화된다는 의미일까요?
이리와 사회를 구분하는 관점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헤르미네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였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잠자고 있는 ‘황야의 이리’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 한줄평 6개
황야의 이리를 마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하리의 이리는 너무 커서 제가 이해하지 못 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
가면무도회에 입장하고 더 이해해보겠습니다
소멸하면 다음 단계일까? 그 자체일까?
여전히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삶에 방향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줄 감상평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ㅎㅎ
각자의 황야의 이리를, 또는 각자가 품고 있는 모종의 존재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작품 그리고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