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번의 구타
프랑수아 트뤼포
작품소개
트뤼포틈만 나면 영화를 보던 어린 시절을 보낸 시나리오 작가가 고심해서 큐레이팅 했습니다. 400번의 구타 (1959): 문학에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면 영화에는 <400번의 구타>가 있습니다. 60년대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누벨바그 운동의 선두주자,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대표작인 <400번의 구타>는 누구도 동정해주거나 도와주지 않는...
💬 질문 5개
1. 앙트완이 얌전히 참고 어른이 되는 것과 작품에서 하듯 끊임없이 반항하는 것 중 무엇이 앙트완에게 좋았을까요? 2. 앙트완의 부모는 무책임해 보입니다, 부모의 자유와 책임감은 양립할 수 있을까요?
1. 앙트완은 영화를 본 뒤 가장 행복해보였습니다. 앙트완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2. 만약 선생님이 앙트완의 글쓰기를 칭찬해주었다면 앙트완의 인생은 조금은 바뀌었을까요?
앙트완처럼 학교, 가정, 경찰서 그 어느 곳에서도 지켜주지 않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지 않는 상황에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경찰서에서 감화원으로 가는 차 뒤에서 앙트완은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영화를 접한 뒤 몇 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1.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폭력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폭력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리고, 이것을 파훼할 방법이 있을까요? 2. 나 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란 건 어떤 것 일까요?
앙트완은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문제를 일으키면서, 자기 나름대로 의도가 있었던 행동들을 전부 말썽으로 오해 받습니다. 사춘기의 비행은 뒷일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미성숙함 때문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처음으로 자기 나름의 뜻을 펼쳐보면서 주체성을 발전시키는 과정의 일환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인인 우리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비행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줘야 할까요?
⭐ 한줄평 6개
모든 앙트완이 따뜻한 바다를 만나길 바라며!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보호받기에는 너무 커버린,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사춘기를 향한 연민과 애정
우리 사회의 폭력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남길 수 있고, 고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앙트완이 당한 구타는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어른들의 역할과 어린이의 훈육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앙트완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됏어요
